[논평]
낡은 규제는 그대로, 혁신은 없는 ‘재탕, 삼탕’ 업무계획
방송통신위원회가 21일 2024년 주요업무 추진계획(이하 업무계획)을 발표했다. 예년보다 한 달 이상 늦게 나온 업무계획이지만 새로운 내용은 없었다. 언론통제를 위한 낡은 규제는 그대로 남기고, 제도 개선은 수년째 묵은 방안을 재탕하는 데 그쳤다. 새 위원장의 철학과 비전이 담긴 정책을 찾아보기 어렵다.
제도 개선의 전제인 성과 평가부터 크게 잘못됐다. 재원의 대안 없이 무리하게 강행한 수신료 분리징수 도입으로 공공성을 제고 했다는 자찬은 낯 뜨거운 일이다. 현장에 혼란만 일으키고, 시행이 유예된 정책이 무슨 성과란 말인가. 이동관 위원장의 탄핵 사유였던 ‘가짜뉴스 대책’을 성과로 꼽은 것도 어불성설이다. 행정기관이 주도하여 뉴스에 개입하는 조치를 ‘자율규제’로 포장한 것이야말로 ‘가짜뉴스’이자 허위·기만·왜곡이다. 포털 조사는 이용자 권익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네이버가 ‘보수언론 죽이기’를 한다는 근거 없는 음모론을 퍼뜨려 뉴스 서비스에 외압을 가하려는 시도였을 뿐이다.
규제 개선도 혁신과는 거리가 멀다. 방통위는 방송산업 경쟁력 제고를 위해 허가·승인 유효기간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긴급하고 심각한 위반이 있을 시 최소 유효기간을 축소하는 방안을 병행”하겠다고 단서를 달았다. 언제든지 방통위의 자의적인 판단에 따라 특정 방송사를 겨냥해 규제를 차별하여 적용할 수 있는 불확실성을 남겨둔 것이다. 이는 방통위가 내세우는 규제 개선 목적과 모순된다.
“미디어의 사회적 가치와 진흥을 균형 있게 반영”하지도 않았다. 광고규제의 경우 방송 광고 활성화를 위해 최소규제를 지향하되 이에 따라 희생되는 시청권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병행해야 한다. 사후약방문 같은 사후규제 강화가 아니라 최소규제 영역에서 시청자 보호를 강화함으로써 이익 균형을 추진해야 한다. 예컨대 간접광고·협찬 등 프로그램 내 광고에 대해서는 광고 내용물의 작성 및 시청자 고지를 의무화하는 투명성 조치가 필요하다. TV로 침투하는 타겟광고를 규제하기 위한 대책이 담겨야 한다. 디지털 시청각미디어를 주로 이용하는 어린이 청소년을 더욱 잘 보호하기 위한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 방통위가 시민사회에 담을 쌓고, 한쪽 귀만 열고 있으니 정책의 균형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
규제를 대폭 완화한다면서 정작 국내 방송산업의 발전을 가장 크게 가로막는 정치적 통제를 위한 낡은 규제는 그대로 남겨뒀다. 방송의 공정성 평가를 강화하고, 이를 재허가·재승인에 반영하겠다는 게 대표적이다. 이는 MBC 등 특정 언론사를 압박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크다. 임시조치 대상을 모욕까지 확대하는 정책도 인터넷 표현의 자유를 후퇴시키는 제도 개악이다. 이런 낡은 규제를 강화하는 것도 모자라 정부가 민간 기업 간의 뉴스 제휴 계약에 직접 개입하고, 정치적 공정성을 기준으로 행정기관이 뉴스 알고리즘 검증 절차에 관여하는 정책을 밀어붙이는 건 혁신은커녕 퇴행이라 해야 할 것이다.
방통위 정책의 혁신은 정치로부터 벗어나 규제기구의 독립성을 확보하고, 이를 통해 언론 미디어의 자유를 보장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미디어 정책이 정치적 유불리에 의해 좌우되는 나라에서는 미디어 산업의 활성화도, 공공성의 강화도 불가능하다. 정치적 다원성을 상실하고, 시민사회를 적대하는 방통위 2인 체제로 사회적 신뢰를 얻을 수는 없다. 관료들이 관행적으로 반복하는 재탕, 삼탕의 정책으로 미디어의 혁신은 요원하다. 김홍일 위원장은 어디에서 혁신을 시작해야 하는지 다시 생각해보기 바란다. (끝)
2024년 3월 25일
언론개혁시민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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