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바이든-날리면’ 심의를 중단하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내일(20일)부터 윤석열 대통령의 ‘바이든-날리면’ 발언을 보도한 MBC 등 9개 방송사에 대해 의견 진술을 실시한다. 의견 진술은 통상 제재조치를 내리기 위한 절차로 강도 높은 중징계가 예상된다. 언론연대는 ‘바이든-날리면’ 보도에 대한 중징계 시도에 반대하며, 언론의 자유를 제한하는 과잉심의를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
1. 방심위는 당초 ‘재판이 진행 중’이라는 이유로 의결을 보류했다. 그게 “방심위가 지켜온 심의 원칙”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판결이 확정되지 않았는데도 심의를 재개했다. 이에 대해 류희림 위원장은 “방심위는 법원 판단에만 의존하는 기관이 아니다. 법원 판단은 참고자료에 불과하며 반드시 확정판결에 따라 심의해야 한다는 당위성은 없다”고 말했다. 이 말이 맞는다고 치자. 그렇다면 왜 방심위는 (참고자료에 불과한) 1심 판결이 나오자마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신속하게 심의를 재개한 건가. 앞으로는 어떻게 되나. 재판이 진행되면 의결을 보류하는 건가, 아니면 재판과 별개로 심의를 진행하는 건가. 만약 2심에서 판결이 뒤집히면 어떻게 되나. 명확하고, 일관된 심의 원칙을 알 수가 없다. 이런 걸 ‘자의적 심의’라고 한다. 동일한 사안을 두고 심의 원칙이 오락가락해서는 안 된다.
2. 류희림 위원장의 말대로 정정보도 청구 재판과 행정규제의 판단 요소는 완전히 동일하지 않다. 예컨대 정정보도 청구에서는 언론사의 고의나 과실을 요하지 않지만, 객관성 심의에서는 매체별 특성, 프로그램의 성격, 의도성, 유사 심의사례와의 형평성 등 다양한 요소들이 제재수위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법원의 정정보도 판결이든, 방심위의 객관성 심의든 어느 경우라도 국가의 개입을 최대한 자제해야 한다는 원칙만큼은 동일하고, 확고하다. 그게 헌법의 정신이다.
이러한 원칙에 따라 방심위의 내용 규제는 최소한으로 제한돼야 한다. 보도시사 프로그램에 대한 객관성, 공정성 심의는 언론통제로 작용하지 않도록 더욱 자제해야 한다. 특히, 대통령이나 정부 정책에 관한 보도에 개입하는 것은 극도로 삼가야 한다. 언론의 정부·권력 감시는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는 핵심 내용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이는 방심위가 패소한 여러 재판에서 거듭 확인된 바이다.
더구나 ‘바이든-날리면’처럼 논쟁적인 사안의 진위 여부를 행정기관이 직접 판정하고, 제재를 내린다면 표현의 자유가 위축되고, 시민사회의 자유로운 토론을 저해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정정보도 판결이 났다고 하여 행정제재의 사유가 자연 발생하는 게 아니다. 국가기관의 성격을 가진 방심위가 대통령 발언 보도를 심의, 징계하는 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방심위는 법원 판단과 별개로 최소 심의의 원칙을 지켜야 하며, 이에 따라 ‘바이든-날리면’ 심의를 종료하는 게 타당하다.
3. 한편, 지난 1월 30일 방송소위 회의에서 한 위원은 “MBC가 첫 보도를 한 만큼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고, 이후 다른 보도들은 구분해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선, 이 말은 사실관계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최초보도는 심의대상인 <12MBC뉴스>나 <MBC뉴스데스크>가 아니다. MBC 유튜브(보도) 영상(오전10시7분경)이다. 유튜브 영상은 방심위의 심의대상이 아니다.
또한, MBC가 유튜브에 논란이 된 촬영 영상을 게재한 이후 정오뉴스까지 약 2시간 사이에는 박홍근 당시 민주당 원내대표의 공개비판을 비롯하여 윤석열 대통령의 비속어 발언을 전하는 다수의 (인터넷)언론보도가 이뤄졌다. MBC정오뉴스가 그 이후 모든 보도들에, 게다가 <KBS뉴스9>, <SBS8뉴스>와 같이 한참 시간이 흐른 저녁 시간대 뉴스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는 건 검증되지 않은 일방적인 주장에 불과하다. MBC보도를 차별적으로 심의해야 하는 사유로 삼기에는 근거가 현저히 부족하다.
따라서 <12 MBC 뉴스>와 이후 다른 보도를 구분하여 MBC를 더 중하게 제재해야 할 만한 특별한 사유가 없다. 이는 MBC에 대한 ‘표적심의’를 정당화하고, (개인적으로든 조직적으로든) ‘무더기 중징계’의 부담을 피하려는 꼼수라고 의심된다.
4. 저널리즘 규범에 따르면, 심의 대상 보도에 포함된 음성처럼 어떤 단어인지 명확하게 들리지 않고,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경우 언론사는 단정적인 보도를 피해야 한다. 그렇다고 하여 단정적인 보도를 모두 허위나 객관성 위반으로 판단해 징계해서도 안 된다. 그렇게 하면 진위 여부가 확실하게 확인된 정도에 이르지 못한 대부분의 언론 보도는 예외 없이 처벌의 대상이 되어 언론의 자유가 심각하게 침해될 것이다. 언론사가 불명확한 내용을 사실이라고 단정해서는 안 되듯이, 규제기관은 언론사에게 추호도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만을 보도하도록 요구해서는 안 된다. 더욱이 ‘바이든/날리면’처럼 여전히 증명 가능한 객관적인 사실이 드러나지 않은 경우라면 규제기관 또한 함부로 허위 여부를 단정해서는 안 된다. 이에 대한 판단은 언론윤리와 저널리즘 비평, 나아가 사회적 토론의 대상으로 남겨두어야 한다.
5. 이에 더하여, 대통령의 공개된 발언을 보도함에 있어 방송사에게 음성판독 등의 과학적인 방법으로 증명을 요구하는 것은 방송 보도의 일반적인 관행과 시청자들이 보도내용을 이해하는 통상적인 관례에 비추어 상당히 부당하고 무리하다. 특히, 그 대상이 고위공직자나 공적 사안인 보도에까지 언론사에게 이런 엄격한 증명을 요구한다면, 권력자에 의한 ‘입막음’ 소송의 근거로 활용되어 정정보도 청구와 객관성 심의 제도가 남용되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그 피해는 국민 알권리의 침해로 이어질 것이다.
현행 심의제도는 방심위에 행정기관이 가져서는 안 되는 과도한 권한을 부여하는 반면 이를 통제할 수 있는 장치가 부재하다. 누군가 그걸 악용하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다. ‘류희림 방심위 체제’의 파행, ‘바이든-날리면’ 심의가 바로 그 증거이다. 국가가 보도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직접 심의하는 방심위는 이미 실패했다. 더 늦기 전에 근본적인 결함을 고쳐야 한다. (끝)
2024년 2월 19일
언론개혁시민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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