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미디어후토크/콘텐츠별 보기

[2호] 프라이버시와 기술에 대하여(저자, 다니엘 솔로브)

by PCMR 2025. 6. 27.

프라이버시와 기술에 대하여(저자, 다니엘 솔로브)

On Privacy and Technology (written by Daniel J. Solove)
 
김보라미(변호사)

 

 

꽤 오래전 일이다. 온라인에서 조중동 광고리스트를 올리며 소비자 보이콧 운동을 하던 활동가들이 구속된 사건이 있었다. 단지 보이콧 리스트를 게시했다는 이유로 구속된 사실이 충격적이어서, 내 의뢰인도 아니었지만 서울구치소에 구속된 활동가를 접견한 적이 있다. 구속된 사람이 평범한 직장인이자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일반 개인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더욱 마음이 무거웠다. 구속까지 갈 일이었을까. 그 즈음 인터넷을 공부하려고 접한 책이 바로 솔로브 교수의 “인터넷 세상과 평판의 미래”였다.

솔로브 교수는 평판의 미래에서, 디지털화된 인터넷 환경에서 개인이 얼마나 고통받을 수 있는지 보여주며 인터넷의 어두운 미래를 경고했다. 특히 첫 장에 등장하는 한국의 ‘개똥녀’ 사례를 통해, ‘공공장소에서 애완견 배설물을 치우지 않은 잘못은 있지만, 전 세계가 그녀를 개똥녀로 낙인찍는 것은 과도하다’고 문제제기했는데 신선한 느낌을 받았다.

이후 그는 “프라이버시 이해하기(Understanding Privacy)”에서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이론을 적용, 프라이버시 개념을 상향식(bottom-up)으로, 맥락과 뉘앙스를 고려해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프라이버시는 법에 정의된 개념으로 한정할 것이 아니라, 다양한 맥락에서 해석되어야 한다는 점을 일깨워주었다. 또 “숨길 것 없음(Nothing to Hide)”에서는 ‘숨길 게 없다면 감시를 걱정할 필요 없다’는 정부와 기업의 오만한 논리를 조목조목 비판했다.

올해 출간된 신간 “프라이버시와 기술에 대하여”는, 1996년 예일 법학대학원에서Jack Balkin 교수의 사이버스페이스 법 과정을 수강하며 시작된 약 25년간의 프라이버시 연구 여정이 집약된 책이다. 기존 저서와 논문에서의 논리가 응축되어 있다.어디선가 본 듯한 주장들을 만날 때마다 함께 십년이 넘게 솔로브 교수의 저작물들을 읽을 때 경험했던 일들이 떠올라 반갑다.

그는 이대로라면 머지않아 사라질 수 있는 프라이버시를 위해 할 일을 하기 위해 이 책을 쓴 것 같다. 우리 사회에서도 “나의 개인정보는 공공재”라며 프라이버시 없는 미래를 체념하는 듯한 분위기가 있는데, 솔로브 교수는 이러한 패배주의는 “규제 회피를 원하는 자들의 이익에 봉사하는 것”이라며, “기술의 복잡함과 속도, 힘에 압도당하지 말아야 한다”고 누구 좋은 일을 하는 거냐고 힘내라고 다독인다.

현실적으로 개인이 스스로를 보호하려면 아주 적극적으로 힘들게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하지만, 솔로브 교수는 이런 개인적 고통스런 노력만으로는 개인을 보호할 방법은 사실상 없다고 진실을 까발린다. 개인정보 처리 방침을 읽고, 옵트아웃하고, 삭제를 요청해도 실질적 보호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유럽연합의 개인정보보호법(GDPR)은 반짝이는 성취지만, 이를 모델로 한 다수 국가의 법률도 아직 충분하지 않고, 미국은 연방 개인정보보호법도 없다. 각 주법들이 고군분투하고 있을 뿐이다. 결국 “법률”의 개선이 근본적 해결책일 뿐이다.

더 나아가 기술기업이 만들어낸 은유와 환상은 제대로 된 입법 과정에 심각한 장벽으로 등장한다. 기술을 인간처럼 느끼게 만드는 것은 문제를 더 복잡하게 한다. 인공지능은 실제로 ‘지능’이 아니라, 수학과 데이터의 결합일 뿐이며,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는 점을 지적한다. 인간의 편견과 결함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을 뿐이다. 기술기업이 강요하는 은유에서 벗어나야만, 우리는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피할 수 있다.

솔로브 교수는 여러 차례 강조한다. “중요한 것은 권력관계”라는 것이다. 개인정보 보호 역시 권력의 문제다. 기술기업은 감시를 통해 개인 통제를 용이하게 하고, 불평등을 심화시키며, 체계적 식별로 빅테크의 권력을 강화한다. 그리고 프라이버시 보호의 문제, 내가 나를 지키는 방법과 책임을 준비되지 않은 개인에게 전가한다. 현실에서 권력은 오직 권력에 의해서만 제어될 수 있을 뿐이다.

오래전 조중동 광고 보이콧 운동을 주장하다 감옥에 간 그 평범한 사람의 삶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가 권력화된 미디어에 맞선 힘없는 개인이 아니었다면 구속까지 되었을까. 권력의 문제를 읽으며 오래전 억울함을 느끼며 솔로브 교수를 처음 만났던 그 사건이 떠올랐다. 그 문제도 권력 문제였었지.

10년도 채 되지 않아 ‘악마가 되지 말자’던 기업은 감시자본주의의 대표주자가 되었고, 1년도 되지 않아 오픈AI 역시 비영리의 사명에서 멀어졌다. 빅테크의 권력 앞에서 개인이 어떤 소리를 내야 하는가. 솔로브 교수는 민주주의 가치를 돌아보며 “프라이버시는(아직) 죽지 않았다”고, 그리고 이를 살리는 길은 권력관계를 다시 회복하는 것임을 힘주어 외친다. 프라이버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끝)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