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동덕여대 학생들의 질문에 사회와 언론은 답할 준비가 돼 있나
동덕여자대학교의 ‘남녀공학 전환 반대 시위’가 전국적으로, 사회적인 의제로 확산하는 양상이다. 이제 성신여대, 광주여대에서 ‘남학생 입학 전형 반대 시위’로 번져가고 있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이번 사태의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 논의할 자세가 돼 있는지 여전히 의문이다.
동덕여대 학생들은 지난 10일부터 남녀공학 전환 전면 철회를 요구하며 농성을 벌이고 있다. 이유가 뭔가. 학교 측에서 중요한 구성원인 학생들과 어떠한 협의도 없이 ‘남녀공학 전환’을 추진한 것에 대한 문제 제기다. 학교 측은 “확정된 게 아니다”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다. 중차대한 논의 속에 학생들이 배제됐다는 점은 달라지지 않는다.
동덕여대 학생들이 느끼는 위기감은 단순히 ‘남녀공학 전환’으로만 국한된 게 아니다.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가부장제와 성차별 그리고 점점 심화하는 백래시 현상을 빼놓고 이 문제를 바라볼 수 없다. ‘여성들의 안전한 공간’이란 단순히 물리적 거점만을 뜻하지 않는다. ‘페미니즘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할 장이 사라질 수 있다’는 학생들의 우려를 무겁게 직시해야 한다. 대학이란 공간으로 한정하더라도 상황은 명확하다. ‘여학생회 존폐’ 논란은 어떻게 볼 것인가. 남초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역차별 논쟁이 벌어지면서 이미 일부 대학에서는 총여학생회가 폐지됐다. 총여학생회가 존치되더라도 규모가 줄어드는 등 목소리에 힘이 빠지긴 마찬가지다. 이것이 현 동덕여대 학생들의 투쟁을 이해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반이다.
최근 논란이 일고 있는 서울여대 성폭력 사건 또한 무관치 않다. 서울여대는 지난해 학생들을 대상으로 성폭력을 저지른 한 교수에 대해 ‘감봉 3개월’이라는 다소 가벼운 징계를 내렸다. 이에 분노한 학생들이 학교에 비판 대자보를 붙이는 건 당연한 권리였다. 하지만 가해자가 대자보를 문제 삼아 명예훼손으로 고소했고, 이를 계기로 학생들의 시위가 본격화됐다. 과연, 누가 싸움을 만드는가.
대학의 본질과 기능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동덕여대는 학생들의 교육을 위한 기본적인 여건을 마련하고 있는가. 학생들은 ‘교수진이 부족해 수강 신청을 전쟁처럼 치르고 있다’고 말한다. 또한 기숙사가 부족하지만, 학교는 대책을 내놓고 있지 않다고 토로하고 있다. 한국은 대학 등록금이 비싸기로 유명한 나라다. 하지만 학생들은 비싼 등록금만큼의 교육을 받고 있기는 할까.
동덕여대를 비롯한 여자대학들이 공학으로 전환하고 남학생 입학을 허용하는 논리의 핵심은 ‘학령인구 감소’에 있다. 하지만, 이 말은 동시에 대학들이 그만큼 학생들의 등록금에 의존해 운영해 왔다는 뜻이다. 이게 옳은 방향인가. 아닐 것이다. 한국 사회 대학 교육은 이미 정부의 재정지원이 없이는 어려운 현실이다. 그리고 정부는 손을 놓은 지 오래다. 최근 대구대 사회과학대학 건물 앞에 차려진 ‘대구대학교 사회학과’ 빈소 사진이 화제가 됐다. 과연, 한국의 대학 교육의 문제와 동덕여대 학생들의 시위는 무관하다 할 수 있을까.
이런 총체적인 문제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고 투쟁하는 학생들을 단순히 ‘철없이 반대만 한다’, ‘페미가 문제’라고 이야기할 수 있나. 하지만 이번 사태에 대해 다수 언론의 보도는 여전히 문제적이다. ‘남학생을 반대한다’라는 점을 부각해 젠더 문제로 몰아가는 양태도 여전하다. 사건의 본질보다는 ‘과격 시위’, ‘비문명’이라는 말이 기사의 앞 단을 차지한다. 그리고 때로는 학생들의 시위가 가십성으로 다뤄지기도 한다.
최근 신남성연대가 동덕여대 앞에 집회신고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온라인상에는 ‘동덕여대에서 칼부림을 벌이겠다’는 게시글이 올라왔다. 최근에는 20대 남성이 동덕여대를 무단 침입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과연, 한국 사회와 언론은 이에 대해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학생들이 교내 창립자 동상과 캠퍼스에 오물을 투척하고 페인트를 칠하거나 취업박람회에서 벌인 행위를 단순히 ‘과격 시위’, ‘비문명’이라만 이야기해선 안 되는 이유다. 사건의 본질과 무관하게 졸업생들이 학생들이 시위에 동참하거나 혹은 반대 성명을 자극적으로 그대로 받아쓰는 행태 또한 마찬가지다. 문제는 이런 식의 태도는 동덕여대 학생들의 싸움을 학내로 축소·고립시킨다는 점이다.
동덕여대 학생들의 투쟁은 한국 사회에서 더 많이, 더 깊이 이야기돼야 한다. 동덕여대를 비롯한 학생들은 ‘소멸할지언정 개방하지 않는다’며 우리 공동체에 질문을 던졌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들이 던진 질문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제대로 알기 위해 노력하고 있기는 한가. 질문을 이해하지도 못한 채 평가부터 내리고 있지는 않는가. 그렇게 오답만 쓰고 있는 건 아닌가. 문제를 해결할 준비가 안 된 건, 학생들이 아니라 사회와 언론이 아닌지 이제라도 진지하게 자성해야 할 때가 아닐까.
11월 18일
언론개혁시민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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