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가짜뉴스’를 판별해 삭제하는 국가검열기구의 탄생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가짜뉴스 근절’을 내세워 위법·위헌적인 심의 확대를 강행하고 나섰다. 방통심의위는 오늘 인터넷 신문에 대한 내용규제를 선언했다. 언론의 자유를 민주화 이전으로 되돌리는 믿을 수 없는 퇴행이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다.
방통심의위는 “지금까지 심의대상에 포함시키지 않았던 인터넷 언론사의 온라인 콘텐츠(동영상 포함) 관련 불법・유해정보에 대해서도 심의를 확대 추진”한다고 공식화했다. 디지털 시대에 신문과 인터넷신문의 구분은 의미가 없다. 거의 모든 신문사가 기사를 인터넷에 올리고, 포털에 송고하며, 동영상을 제작한다. 따라서 “인터넷 언론사의 온라인 콘텐츠(동영상 포함)”를 심의한다는 건, 사실상 모든 신문을 심의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제 대한민국은 행정기관이 신문의 내용을 직접 심의하여 규제하는 나라가 된다. 세계적으로 신문의 내용을 행정기구가 심의하는 민주국가는 없다. 언론의 자유를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부 인터넷 언론사들의 유튜브 콘텐츠가 ‘가짜뉴스’의 온상이 되고 있음에도 규제의 사각지대로 방치되고 있다”는 방통심의위의 설명은 틀렸다. 우선 규제대상을 정하기 위해서는 ‘가짜뉴스’가 무엇인지부터 정의해야 한다. 하지만 방통심의위는 아무런 정의도 없이 ‘가짜뉴스[허위조작뉴스(정보)] 관련 불법·유해정보’라는 표현으로 눙친다. 그러나 정보통신망법상 ‘불법·유해정보’에는 ‘가짜뉴스’, 즉 ‘허위조작정보’에 관한 규정이 전혀 없다. 없는 걸 있는 것처럼 만들어 사실상 모든 기사를 대상으로 ‘허위성’ 여부를 판별하겠다고 말하는 셈이다. 이제 모든 신문사와 기자들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허위’ 의심하기만 하면, 방통심의위에 불려가 허위가 아니라는 사실을 소명해야 한다.
인터넷 기사가 규제의 사각지대라는 주장도 사실이 아니다. 방송의 공공성과 영향력을 고려하여 방송심의를 하는 것일 뿐, 인터넷신문을 내용규제하면 오히려 과잉규제가 된다. 또한 우리나라는 허위정보유통을 처벌하는 표현규제를 지나칠 정도로 많이 갖추고 있다. 허위사실을 적시하여 타인의 명예를 훼손한 경우 명예훼손죄로 형사처벌하고, 인터넷 명예훼손은 가중 처벌한다. 심지어 사실을 적시해도 명예훼손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 선거 시기에는 ‘인터넷선거보도심의위원회’가 인터넷 기사를 심의하며, 선거법에 의해 엄격한 규율을 받는다. 이처럼 국제표준에 어긋나는 과잉규제로 인해 해외사업자에 대한 규제적용이 어려워지고 규제사각지대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각지대는 방송통신법제를 디지털 환경에 맞게 전면적으로 개정하고, 국가 간의 규제협력을 통해 해소되는 것이지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이 구글 임원과 면담을 가졌다(는 보도자료를 뿌린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방통심의위 주장대로 정보통신망법에 의거하여 인터넷 신문을 심의할 수 있다고 가정하면, 이는 곧 방통심의위가 인터넷 신문 기사에 대하여 삭제·차단 조치를 정하여 통보하면 방통위는 인터넷서비스 제공자에게 삭제·차단을 명령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한 마디로 방통심의위와 방통위가 ‘기사 삭제 권한’을 갖는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언론기사의 삭제는 법원의 고도의 심리에 의한 판결에 따라 매우 제한적으로 이뤄져왔다. 이제 정부여당이 위원의 과반을 임명(위촉)하는 방통(심의)위가 그런 권한을 갖겠다는 것이다.
방통심의위는 한발 더 나아가 “‘정보통신에 관한 심의규정’을 위반한 인터넷 언론사의 경우 관할 지자체 등 행정기관과 플랫폼 사업자에게 불법・유해정보 유통사실을 통보하고,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겠다고 밝혔다. ‘가짜뉴스’ 등 악의적 행위가 단 한 번이라도 적발되면 언론사를 퇴출하고 다시는 창간하지 못하도록 금지하는 이른바 ‘원스트라이크 아웃제’ 시행에 중추 역할을 담당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종합하면 방통심의위는 모든 언론 기사의 ‘허위’여부를 판별하여, ‘삭제・차단’할 수 있고, 나아가 언론사의 ‘폐간’ 여부까지 좌우하는 무소불위의 초법적인 검열기구로 재탄생하는 것이다.
심각한 문제는 민간기구에 불과한 방통심의위가 어떠한 사회적 논의나 입법부의 통제도 없이 자의적인 법령 해석을 통해 언론법의 체계를 뒤흔들고 있다는 것이다. 그간 ‘가짜뉴스 근절’을 내세운 여러 법제도 방안들이 나왔지만 이처럼 헌법과 언론법규범에 명백히 반하는 제도를 난폭하게 밀어붙인 적은 없었다. 국민의 대표인 국회는 하루빨리 방송통신 행정기관들의 위헌적 일탈행위를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언론계도 언론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행동에 나서야 한다. 언론의 시계를 ‘보도지침’의 시대로 되돌리려는 시도가 자행되고 있지 않은가!
2023년 9월 21일
언론개혁시민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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