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논평] ‘손쉬운 금지법’으로는 차별과 혐오에 맞설 수 없다

PCMR 2026. 7. 20. 14:39

김현 의원 보도자료

[논평] ‘손쉬운 금지법’으로는 차별과 혐오에 맞설 수 없다

: 논란되자 '철회'…금지법을 만병통치약으로 여기는 인식이 문제


22대 국회가 무수한 ‘방지법’과 ‘금지법’을 양산하고 있다. 지난 7월 7일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 속칭 ‘허위조작정보 근절법’이 대표적이다. 이 법은 기존의 내용의 전부 또는 일부가 허위인 ‘허위정보’와 내용을 사실로 오인하도록 변형한 ‘조작정보’라는 개념을 신설해 유통을 금지시키며, 고의나 과실로 이러한 허위조작정보를 유통한 개인과 매체에 법원이 인정한 손해액의 최대 5배까지 징벌적 손해배상을 내릴 수 있도록 했다. 또한 공공연하게 인종, 국가, 지역, 성별, 장애, 연령, 사회적 신분, 소득 수준 및 재산 상태를 이유로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 대해 폭력이나 차별을 선동하고, 증오심을 심각하게 조장해 존엄성을 훼손하는 내용을 ‘불법정보’로 지정, 유통을 중단시켰다. 

지난 6월 4일에는 이훈기 의원이 일명 ‘일베 금지법’이라는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해당 법은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 등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개인이나 집단은 물론, 국가적·사회적 사건의 희생자와 유가족에 대한 모욕, 조롱, 비하, 멸시, 희화화가 반복적이고 악의적으로 유통되고 있다”며 ‘조롱·혐오정보’라는 개념을 만들어 불법정보로 규정하고, 정보통신 서비스 제공자나 게시판 관리·운영자가 필요한 경우 해당 정보의 삭제, 접속 차단, 게시자의 이용 제한, 수익화 제한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하며 이를 실시하지 않은 경우에는 과징금을 부과하거나 이용정지, 폐쇄 등을 명할 수 있도록 했다.

여기에 김현 의원이 「음악산업진흥법」과 「정보통신망법」을 모두 개정하는 형태로 ‘혐오음원방지법’을 발의했다가 논란이 커지자 20일(오늘) 철회했다. 지난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을 조롱한 래퍼 ‘리기 이치’의 사례 등 논란이 일자 오프라인 음반 유통업자나 디지털 음원 플랫폼이 음반 및 음원을 유통하기 전 반드시 「청소년보호법」에 근거한 사전 유해성 심사를 거쳐야 하며, 해당 검사에서 유해성이 확인되는 경우 제작자의 연령을 확인해 청소년이 작품을 만든 것으로 식별되면 즉시 음반과 음원의 유통을 중단시켜야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정식 심의 절차가 내려지기 전에도 ‘청소년에게 명백하고 중대한 피해를 줄 우려가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경우 곧바로 관계 중앙행정기관의 장이 유통 정지 및 제한을 요청할 수 있도록 했다. 

해당 법안들은 ‘허위조작정보’이든, ‘조롱·혐오정보’이든, ‘청소년 유해 음반·음원’이든 모두 전면적으로 게시와 유통을 제한하는 것을 주된 내용으로 삼고 있다. 정보 자체의 유통을 근본적으로 차단하게 되는 만큼 엄격한 규정과 처리 절차가 필요하다. 그런데 이 법들은 모두 유통을 제한하는 판단을 사실상의 행정기관인 방송미디어통신심의위원회가 담당하거나, 각 민간 사업자가 임의적으로 차단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심지어 김현 의원의 ‘혐오음원방지법’은 제대로 조사 절차가 진행되기 전에도 유통을 정지하거나 제한이 할 수 있도록 해 문화운동단체들의 거센 비판을 받기도 했다. 

혐오와 차별은 결코 묵과할 수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정당한 비판마저 차단하도록 법을 설계하고 방지책도 미비한 채로 시행하는 것은 위험하다. 무엇보다 이런 금지법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혐오와 차별을 막을 수 있는지도 미지수다. 오히려 인터넷에서는 법에 걸리지 않을 수준으로 표현을 우회하며 법을 대놓고 비웃는 일만이 넘쳐난다. 몇몇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조선족’을 금지 단어로 지정하자, 여러 차례 우회 과정을 거쳐 이젠 좀처럼 ‘조선족’을 쉽게 연상할 수 없는 ‘리슝좍’이라는 표현을 만들어 중국 동포를 혐오하며 공격하는 상황처럼 말이다. 

한국은 사실 적시 명예훼손까지도 처벌하고 있는 몇 안 되는 국가이기도 하지 않은가. 현행과 같은 방송미디어통신심의위원회의 구성과 심의 절차를 그대로 놓아둔 상황에서는 성별이나 국적 혐오는 정당한 비판으로 놓아두고, 정작 성차별적 언행을 일삼는 남성 집단에 대한 비판, 노동자를 차별하는 기업에 대한 비판, 소수자의 목소리를 귀담아 듣지 않는 정부와 집권 여당에 대한 비판이 ‘불법정보’와 ‘혐오’의 꼬리표를 달고 차단되는 끔찍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

그간의 무수한 규제 실패 사례를 뒤로 한 채, 강력한 금지와 차단 조치로 혐오와 차별을 막을 수 있다고 여기는 발상은 무척이나 위험하다. 혐오와 차별이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환경과 맥락을 방치하는 한, 혐오와 차별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여도 의도적으로 혐오를 퍼트리고자 하는 이들은 법보다 빠른 속도로 법을 우회하는 길을 찾아 공권력을 조롱하며 사회적 소수자를 짓밟을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강력한 규제가 아니라 제대로 된 기준과 절차를 만들고, 중장기적으로는 사회 규범적인 차원에서 혐오와 차별을 저지르는 행위가 결코 용인될 수 없는 것임을 확립하도록 만드는 움직임이다. 

2026년 7월 20일
미디어사회운동센터W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