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호] 한국 극우 운동의 미디어화
한국 극우 운동의 미디어화
이준형(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 연구원)
2000년 초, 보수-극우 세력의 헤게모니 상실을 계기로 전면화된 한국 극우 운동은 박근혜 탄핵 국면에서 한 번, 윤석열 계엄-내란 국면에서 다시 한 번 활성화됐다. 윤석열 계엄-내란 국면에서 관찰된 극우 운동은 ‘미디어화(mediatization)’되었으며, ‘파시즘화’되었다는 특징을 갖는다. 미디어화는 미디어 영역의 논리가 다른 영역을 주도하게 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파시즘은 하위·중간계급이 주도하는 민족주의·극단우파적인 정화·팽창 운동에 보수-극우 엘리트가 가담하여 권력의 창출까지 나아가는 현상을 뜻한다. 다시 말해 한국 극우 운동은 미디어, 즉 극우 유튜브가 주도하는 운동이 되었으며, 정치권과 레거시 미디어를 포함한 보수-극우 엘리트의 가담으로 인해 파시즘의 형태를 띠며 발달하고 있다. 박근혜 탄핵 국면 당시 보수 언론의 탄핵 동조에 실망한 탄핵 반대 세력은 극우 유튜브들을 대체재로 삼기 시작했다. <신의 한수> 등 100만명 이상의 구독자를 확보한 극우 유튜브가 대거 등장한 것도 그 이후다. 문재인 정권 내내 여성 혐오, 이민자 혐오, 중국 혐오 등을 중심으로 세를 불려온 극우 유튜브들은 점차 보수-극우 정당 권력의 중심으로 침투해가기 시작했다. 김무성, 홍준표 등 당의 중진들은 2020년 미래통합당의 총선 패배 직후 ‘극우 유튜버들이 당을 망치고 있다’며 비난하기도 했는데, 이는 오히려 당내에 극우 유튜브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후였다.
문재인 정권이 검찰개혁, 부동산 정책 등에서 실패하면서 윤석열과 국민의힘은 어부지리로 정권을 얻었으나, 이들은 한국 사회에 닥친 전면적인 사회·문화·경제·정치적 위기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헤게모니를 확보할만한 역량을 갖추지 못한 상태였다. 윤석열의 돌파구는 ‘여가부폐지’ 공약과 ‘건폭몰이’로 상징되는 노동·여성에 대한 혐오와 반공주의 담론을 통해 극우 세력을 정권지지 세력으로 동원해내는 것이었다. 그리고 윤석열로 하여금 이러한 전략적 선택을 하게 만든 핵심 요인들이 바로 극우 유튜브들이었다. 윤석열은 취임식에 극우 유튜버들을 대거 초대하고 그 관련자들을 대통령실 등 요직에 기용했으며, 시민사회수석실을 통해 직접 유튜버 관리에 나서기도 했다. 윤석열과 극우 유튜브이 담론적 동조화의 징후는 여러 군데에서 발견됐다. 윤석열이 ‘이태원 참사 조작설’을 언급했다는 김진표 전 국회의장의 증언,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체포되기 직전인 2025년 1월 여당 인사들에게 “레거시 미디어는 너무 편향돼 있기 때문에 (극우) 유튜브에서 잘 정리된 정보를 보라”고 조언한 사실까지. 계엄-내란 사태 또한 부정선거론, (비상계엄을 포함한) 비상조치의 필요성, 야당에 대한 혐오 등 극우 유튜브가 생산한 담론에 윤석열이 적극 동조한 결과였다. 윤석열 탄핵 국면이 되자 극우 유튜버들은 탄핵 반대 담론을 중심으로 극우 세력 동원에 나섰고, 심지어 서부지법 폭동을 선동하며 민주적 제도에 대한 극단화된 공격까지 감행했다.
보수-극우 정당의 엘리트 정치인들과 엘리트 레거시 미디어들도 극우 세력에 동조했다. 윤상현, 권성동, 나경원 등 주요 보수 정치인들은 윤석열 탄핵 반대에 나섰고, 극우 집회 연단에 수시로 올라 부정선거론을 설파하고 헌재를 공격해야 한다며 청중들을 선동하기도 했다. 조선일보, 매일신문, 채널A, MBN 등 보수신문·종편들은 극우 정치인과 전광훈, 전한길 등 극우 지도자들의 발언을 그대로 받아쓰기하거나 심지어 직접 인터뷰하며 극우 담론을 확대재생산 했다. 조기대선 국면에서는 극우 정치 세력과 야당에 대한 양비론을 펴거나 의도가 다분한 선거공학적 관점으로 선거 이슈를 다루는 등 극우 세력의 영향력에 편승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극우 운동에 대한 보수 엘리트들의 가담은, 그 자체로 극우 담론을 공식적인 정치 담론의 반열에 올리는 행위이며, 이러한 극우 세력 집권의 현실화를 추동하는 일이다. 앞서 말했듯, 우리는 이것을 파시즘 현상으로 분류한다.
이처럼 오늘날 한국 사회의 총체적인 위기는 극우 운동의 발흥으로 이어지고 있다. 극우 운동은 주목 경제의 논리에 따라 극단적인 담론을 만들어낼수록 돈을 버는 극우 유튜버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고, 보수 엘리트들의 가담으로 인해 공식적으로 승인된 정치 운동의 일종이 되어가고 있다. 극우의 창궐에는 여러 요인이 있겠으나, 가장 큰 요인은 극우가 ‘쉽다는데’ 있다. 민주주의는 복잡하고 더디며 어렵지만, 극우는 명쾌하고 쉽다. 위기의 책임을 누군가에게 뒤집어씌우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나치는 유대인을, 반공주의는 공산주의를 희생양으로 삼았다.
복잡하고 어렵지만 결코 후퇴되어선 안 되는 민주주의를 위해 그 어느 때보다도 단호한 결의와 행동이 필요한 때다. 극우에 동조하는 정치인들과 엘리트 언론, 그리고 극우 유튜버들에 대한 민주적 통제력을 현명하게 발휘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