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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호] ‘극우의 언어 납치’에 어떻게 맞서야 할까요?

PCMR 2025. 4. 23. 15:47

‘극우의 언어 납치’에 어떻게 맞서야 할까요?

김동찬(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장)

 

“표현의 자유는 중요하지만…” 표현의 자유 운동을 하면서 가장 많이 듣게 되는 말 가운데 하나입니다. 주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규제를 논의할 때 상대가 이렇게 반론을 시작합니다. 그 뒤로는 으레 “절대적인 건 아니다”, “무제한 허용될 수는 없다”는 이야기가 따라옵니다. 심지어 누군가는 “표현의 자유는 너무나 중요해서 자유에 맡겨둘 수 없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표현의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원칙에 누가 동의하지 않겠습니까. 문제는 규제와 처벌을 주장하는 많은 사람이 현재는 그러한 표현이 아무런 제한 없이 보호된다고 잘못된 가정을 한다는 데 있습니다. 국제 기준으로 보면 이미 한국은 어느 나라보다 규제가 엄격해 ‘표현의 자유의 숨 쉴 공간’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 게 현실인데 말입니다.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건 허위정보나 혐오표현이 개인과 사회에 미치는 해악을 무시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표현의 자유는 인권의 중요한 일부이며, 표현의 자유 운동은 인권 운동과 강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표현의 자유를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표현의 자유를 위한 적절한 보호장치를 갖추지 못하는 경우 표현규제가 도리어 인권과 민주주의에 더욱 심각한 해악을 초래하기 때문입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검열의 수단으로 악용되는 한국의 상황은 ‘나쁜 표현’을 걸러 내겠다는 선한 의도가 반드시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걸 보여줍니다. 이런데도 정치권은 표현의 자유에 미치는 영향을 신중히 고려하지 않은 채 더 엄격한 규제와 포퓰리즘 법안을 쏟아내기에 바쁩니다. 

그렇다고 모든 규제가 필요 없다는 건 아닙니다. 허위조작정보와 혐오 발언의 유통을 증폭하는 디지털 플랫폼 환경에서 규제의 필요성은 오히려 커지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극우 유튜브에 빠져 불법 계엄을 선포하고, 극우세력이 허위정보를 앞세워 내란을 옹호하고 폭력을 선동하는 현실을 살아가는 한국에서 엄격한 규제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빅테크 플랫폼의 알고리즘이 미치는 악영향을 진단하고, 인공지능 기술이 제기하는 위험을 예방할 수 있는 해법을 찾는 것은  민주주의의 중요한 과제입니다.

계엄과 함께 들이닥친 극우화의 물결은 안 그래도 어려운 해법 찾기를 더욱 혼란에 빠뜨리고 있습니다. 극우세력이 ‘표현의 자유의 절대적인 수호자’를 자처하고 나선 것입니다. 이들은 ‘표현의 자유’를 내세워 ‘극우의 숨 쉴 공간’을 정당화합니다. 음모론이든 혐오표현이든 뭐든 규제해서는 안 되며, 자율규제마저 검열이라며 반대합니다.

국민일보 이영미 영상센터장은 이런 상황을 극단 포퓰리즘이 정당을 납치하는 현상에 빗대 <극우의 언어 납치>라고 칭하면서 “폭력 선동과 민주주의적 언어의 기묘한 조합은 공론장에 있는 다수를 혼란에 빠뜨렸다”고 말합니다. 그의 말대로 “민주주의 체제 안에서 민주주의 언어에 반대하는 건 가능한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극우세력은 민주주의의 언어를 훔치고, 한편에서는 ‘표현의 자유가 민주주의를 망친다’고 비난을 가하는 형국에서 표현의 자유 운동은 이 난국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요? 정답을 알 수는 없지만 한 가지만은 분명합니다. 검열은 혐오의 치료법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극우에 맞서기 위해 검열을 택한다면 우리는 단지 언어가 아니라 실로 표현의 자유를 빼앗기게 되고 말 것입니다. 앞으로 뉴스레터를 통해 표현의 자유 운동이 맞닥뜨린 과제를 여러분께 소개하고, 고민을 전하겠습니다. 혐오와 검열에 맞설 수 있는 단호한 용기와 현명한 지혜를 함께 나눠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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